'촉'에 해당되는 글 36

  1. 2018.03.19
  2. 2018.03.18 불명확하게 명확한
  3. 2018.03.12 커피와 책
  4. 2018.03.12 사랑
  5. 2018.03.12
  6. 2018.03.12 괜찮다 괜찮다
  7. 2018.03.12 바람의 색깔
  8. 2018.03.12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9. 2018.03.12 고요하게 가자, 그들이 잠들 수 있도록
  10. 2018.03.11 사라짐과 잊힘

2014년






왜 슈베르트를 좋아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내게 의미있는 사람)도  좋아하겠지, 

작곡자는 슬프게 죽었어, 

어느 날 몸이 떨리게 인상 깊이 들려왔어,

그런 이유들이었을까.

곰곰 돌이켜보면 슈베르트라는

그 이름부터 좋았을 것 같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도 이름이 예쁘다.

지메르만이 최근 슈베르트의 D.960과 D.959를 음반으로 내놓았다.

보통은 지메르만 하면, '완벽'을 떠올린다.

그의 연주는, 기교가 기교처럼 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음향을 거쳐 완전한 음악으로 들려온다.

한때 쇼팽의 피아노곡들이 그랬다.

어린 지메르만의 손에서 눈부시게 다시 태어났다.


그러고보면 들어보지 않아도 그의 신보를 알 것만 같다.

      약간의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일 거야.

어찌 되었던 나는 종종 그의 연주를 즐길 거고,

그의 레코드는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거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틈이 생겨날 지도 모르고...


사드 카하트: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뿌리와이파리, 2008년 


또 다른 멋진 뮤지션인 레너드 코헨은,

      세상 만물에는 금이 가 있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고 했다.

그래,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은 '틈'에 관한 이야기다.

틈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좋다.


모든 사람들이 틈을 공감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틈인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틈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썸네일의 생동감은 틈에서 온다.

그 틈은 밤새도록 일하느라 정신이 흐릿해져 놓쳐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또 그 놓쳐버린 것을 윗사람이 수정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일 수도 있지만

틈은 왠지 미래에서 오는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구성과 콘티와 시안이 완벽했을 때 클라이언트는 가끔 외면한다.

그들의 억양을 흉내내 보자면,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카피 한 줄 외에는 모든 것이 틈이어도 좋겠다.

그림 한 장 외에는 모든 것이 틈이어도 좋겠다.

틈을 시도하는 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는 말이다.





불명확하게 명확한

2018년



불명확하게 명확한 



한 편의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몇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미즈미는 30년 전 살인을 저지르고, 지금 다시 

살인을 저질러 재판을 받고 있다. 

영화의 말미엔 사형을 심판 받는다. 

영화는 이 인물과 연관된 세 번의 살인을 다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 번째 살인 

2017년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해석이 가능한데 

미즈미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심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죽음은 그저 심판(=삶)의 형식이다. 

영화의 감독처럼 진실을 뒤적이는 미즈미의 증언은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중언부언은 죽음에 대한 '결정'에 개입하는 비본질적인 것들을

즉자적인 것으로 희화화 시킨다. 

생각없는 것들!

그랬던 까닭인지 감독은, 관객의 생각으로 영화를 밀어둔다.  

말하자면 세 번째 살인은 세 번째 삶을 탄생시킨다. 

그 삶에 대해서도 영화는 명확하게 불명확하다.  


*

하지만 광고는 불친절할 틈이 없다.

불친절을 가장한 친절이 있을 수는 있다. 

수잔 손탁이 예술은 해석(이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 말은

광고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 더 부합한다.

그만큼 광고는 즉물적이여야하고, 

역설적으로 쉬워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처럼 관객의 몫을 남겨두어야 한다.

새우깡 집어먹듯 쉬운 몫, 하지만 고소해야겠지? 애플처럼!








커피와 책

2009년



커피와 책



집, 커피가 떨어졌다.

낮에 사러갈까 했다.
그녀가 가기 싫다했다가
내가 초저녁에 잘 적에 와서는
살살 깨우며 커피사러가자, 했지만
내가 돌아누워버렸다.
    만감이 교차했다.
커피야, 불러봤다가
대신 맥주를 마셔보기도 했다.
월드콘을 먹어보기도 했다.
급기야 위스키 한잔을 마시고.
새우를 굽고 어묵과 두부도 구웠더니
    커피가 더 그립다.


오래된 과테말라.
그녀의 친구가 사왔다는
그 과테말라를 찾은 것은
깊어가는 밤 9시 무렵이었다.
커피는 지금 완성되어 있다.
컴퓨터 옆에서 뜨겁게 김을 뿜어낸다.
나는 드디어 오늘의 커피를
한모금 마실 작정이다.


결혼을 너무 일찍했다. 

아내는 너무  시간 고생했다. 

늦게 만났으면  고생 적게 했을 텐데. 

집안일을 하거나 문화센터에 가는 때가 아니면 

 거실소파나 안방에 앉아 책을 읽는다. 

정확하게 일주일에  . 

나는, 보통은 일주일에 0. 


나는  권을 읽지 않지만 

 권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는 대신 나는 커피를 끓인다. 

91도가 되도록 기다려 - 무려 물을 기다리는 일이다

드리퍼를 달구고 터를 접는다. 

물방울을 떨어트린다. 

부풀어 오르는 스콘 같은 커피 속에 한두 권의 책이 있다. 


연하지만 맛있게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뻔하다. 

맛있는 부분만 가려서 물과 섞는 것이다. 

- 아이미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 대해






사랑



사랑



비밀을 이런 데다 쓰면 안되는데...

내 컴퓨터들의 비밀번호는 죄다  love,라는 단어와 숫자의 조합이다.

love,라는 뜻의 amour,라는 이 영화는 어디서 봤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영화로 남았다.


Michael HanekeAmour

2012년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에 대해 언어로 

코멘트를 시도해 보는 것에 거의 일 년이 흘렀다.

그간 나는 알렉상드르 타로(Alexandre Tharaud)가 연주한 OST를 

가끔씩 꺼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컴퓨터에 리핑해 넣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듣고 있다.

영화에는 단 네 개의 트랙이 흘렀다. - OST음반은 여차저차해서 9개의 트랙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두 트랙, 

베토벤의 바가텔이 한 트랙

(바가텔이 이리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그리고 결정적인 바흐의 코랄전주곡(부조니 편곡)이 한 트랙이 있었다.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바흐 작품번호 639.

주여 당신을 소리쳐 부릅니다


OST의 말미에는 여주인공의 제자로 출연한 

타로와 주인공의 대화가 실려있다 .

그리고 최종의 트랙에는 부부간의 대화가 실려있다.

이 트랙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여자는 고통을 참지 못해 신음소리를 내고

남자는 뭔가를 읽어주고 있다.

6분이 넘는 분량이다.

멋진 백발을 가진 감독의 메시지나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사랑의 총천연색.


작품은 거의 '집'이라는 한 공간으로 말한다. 

어둡고 눅눅한 이곳에 이자벨 위페르가 찾아와야 

조금 활기를 되찾는 그런 공간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한다.

그 사랑이 어떤 색인지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광고라는 포맷에는 결코 담지 못하는

이런 주제의식의 영화가 있다.

So What? : 광고의 한계를 말해주는 거야.



2016년





경주에 '릉'이 있다. 

많다. 

독특한 것은 집 앞의 마당에도 

무덤이 있다는 거다. 


신민아의 대사 : 

경주에서는 릉을 보지않고 살기 힘들어요. 


장률: 경주

2014년 


장률 감독의 '경주'에서는 여러 명이 죽는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모녀부터 죽는다. 

현재가 오히려 고대를 대유한다.


'경주'를 끝까지 보진 않았다. 

신민아가 커튼을 젖히는 대목 정도까지 봤다. 

영화 속이나 영화 밖이나 동일하다. 


나의 대사 : 

      삶에서는 죽음을 두지않고 견디기 힘들어요.


'경주'는 현실적이고 좋은 영화이다.


*

흔하디 흔한 이탈리아 이무지치(I Musici)의 사계를 참 좋아한다. 

많고많은 사계지만 나는 펠릭스 아요(F. Ayo)의 연주가 좋다. 

아요는 없었지만 언젠가 이무지치가 한국에 와서 사계를 연주했다. 

역시 느리지만 세부가 아름다운 연주였다. 

라디오가 중계하는 그 콘서트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몇번이고 들었다. 

막스 리히터(M. Richter)가 편곡한 버전(Version)도 아름다웠다. 

오늘 그 버전의 사계를 라디오에서 해설하는 중에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죽음이 알려졌다. 

소박하지만 매끄럽고 충실도 높은 그의 연주는 

아요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오후 방송에 권혁주의 연주가 전파를 탔다. 

나는 오전 내내 유튜브로 권혁주의 베토벤 협주곡을 듣고 보았다. 


*

네 개의 계절은 끊이지 않고 회귀한다. 

삶과 죽음도 회귀한다. 

삶은 한 계절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2016년 가을



괜찮다 괜찮다

제주, 2009년



괜찮다 괜찮다



바로크 음악그러니까 비발디(Vivaldi)라든가 

바흐의 협주곡은 가리지 않고 자주 듣지만 

모차르트의 것들은 대가의 연주가 아니면  듣지 않는다.

- 최근에는 SWR 레코딩 테잎으로 복각해 만든 요한나 마르치의 LP 좋았다.

오늘은 언제인가 사두었던 롤라 보베스코의 LP.

B면에 있는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을 들었다.

뒷면에 한자가 많은데 제조국은 덕국,이라 되어있다. 

- 덕국은 물론 독일이다.


Mozart: Violin Concerto #5

Lola Bobesco 


*

나는 가끔 바로크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긴 시간 꽃을 피운 바로크 음악은 아마도 바흐 가문에 이르러

거대한 과실을 맛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고전시대 음악인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들으면서 위로 받고 있다.

위로 받을 만한 힘든 일을 겪지도 않았는데 위로 받음을 느낀다.

美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일까?

      당신 한 주 동안 한 일 말이야, 다 지난 일이야, 괜찮다구!

모차르트가 이런 말을 하는 건가? 그래서 말인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은 거다.


*

언젠가 '괜찮다'라고 썼다.

(오래 세탁기 캠페인이었다.)

이건 위로의 괜찮다,였다.

그러고 나서 어떤 겨울 신문에 실린 

인용된 시의  구절에서 괜찮다,라는 것을  보았다.

거기엔 '괜찮다 괜찮다'라고 했다.

괜찮다 괜찮다

라고   연달아 소리내어 읊어보았.

오늘 낮에 라디오 카피를 쓰면서

      나는 괜찮다

라고 썼다아버지의 목소리다.

(돌이켜보면 은연  나도 아이들에게 쓰고 있다.)

그리고 괜찮다 괜찮다 라고 썼다.

어머니의 딸이 어머니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니까.


'위로의 괜찮다'와 '부모의 괜찮다'가

모두 괜찮다.


*

롤라 보베스코, 루마니아 태생인데 벨기에에서 활동했다. 

그뤼미오보다 두꺼운 톤에 동향 출신인 하스킬의 비애를 지녔다

그 톤은 또, 젊어서 죽어버린 디누 리파티 타건을 닮았다. 

이야기가  새지만하스킬은  젊은 날의 위로였다.

정확하게는 실연에 대한 위로였다.

어떤 실연 끝에 나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하스킬의 모차르트를 내내 들었다.

음식을 먹지 않고 드러누워 오직 하스킬을 들었다.

모차르트를 들었다.

거의 열흘 정도를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괜찮아졌다.



바람의 색깔

Jiufen, 2017년



바람의 색깔


슬프지… 뭔가 바뀌게 되면 말야.

자고 일어났더니 바람의 색깔이 달라졌어.

그러면 추억 비슷한  떠올리게 되는 거다.

추억,이라고 하면 왠지 과장  무엇 같긴 하지만.

아주 오래 … 

담배연기 자욱한 패키지 투어,라고 수첩에 썼었다아무말,이었지뭐

그건 혹시 젊은날의 여행을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래야만 한다는 패키지.

낭만이 있어야만 한다는 패키지.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패키지.

그런 것들.

 몇 주 전에 담배를 끊었고 그다지 피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현실의 패키지투어는 아이들을 움직이는 데에 용이했다

타이페이의, 무려 한여름이었다구.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시간 맞춰 움직여 주었다.

타이페이는 마음에  들었다

      돌진하는 낭만 같았다


도시의 공기는 만질  없는 감각으로 가득  있었다.

그걸 만진다면 등려군의 목소리를 만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시간 머물면 추억까지도 생길 법한 곳이었다.


*

사라져도 잊히진 않아,라는 소설  구절이 떠오른다.

사라져도 잊히진 않아.

다시  봐도비문 같아도바보 같아도 멋진 문장이야.

오늘 바람의 색깔이 바뀌면서 타이페이 여행은 사라졌다.

그리고 추억이 되었다.


빼빼 마른 가이드의 말투(전달력은 있지만 억양이 구성진 그런)

아내의 예의  정신 없는 웃음(내게서 멀어지면 마냥 좋아하는 그녀)

시시때때로 제사를 지내는 타이페이의 현대인들(내게는 우아하게 보인 그들)

나와는 확연히 다른 해주의 감수성(도저히 가늠할  없는)

깊이를   없던 우주의 관점이 

지난 색깔의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담배연기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2017년 여름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Zagreb, 2015년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돌이켜보면,

내가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별거 아니었지.


1

여보 두부  사와요!

주말 아침 아내가 심부름 시키면 

디게 마음이 배불렀다.


2

아빠안녕히 주무세요!

심야에 안방문 언저리에서 아들이 인사하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3

영화가 시작하기  비상구 안내영상이 나올 

나는 그냥 좋았다.


4

김사월의 '수잔' 처음 들었을 때도 행복했지.


5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이유없이 행복했다.


6

다음달부턴 제게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순간도어찌보면 짜릿했다.


7

서점에  들어섰을 도서관에  들어섰을 

미치지.


8

차가  미끄러져나갈 때도 행복했고


9

 행복해야 ?

라고 누군가에게 되물었을 때도 행복했다.


10

가끔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극장가서 다시 봤을 때도 가슴이 든든해졌다.


11

누군가를 데리러 가는 길이 행복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했다.


12

내가 과감하게 개인적인 인간이란 사실에도 만족했다.


13

누군가 내가 참여해서 만들었던 광고얘기를 

해주면 정말 좋았다.

(세탁기 사러갔다가 영업사원이 보여주던 영상이 

내가 만든 거였어.)


14

아빠 뻥치지 !

내가 만든 광고를 아이가 믿지 않을  정말 행복했고


15

여보 그만 !

아내조차도 믿지 않을  너무 행복했지.


16

저주받은 걸작칸타타를 탈고 하고   

정말 후련했어.


17

이렇게 타다다닥키보드를 누를  있는 것도 

 행복하다.



고요하게 가자, 그들이 잠들 수 있도록

2013년



고요하게 가자, 그들이 잠들 수 있도록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었던 죽음들은

역사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 누구도 친일부왜역적들의 득세가 

끝이 날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무게다.


윤이상, Cello Concerto

Sigfried Palm, 1976년


산꼭대기에 첼로 한 대가 놓여있다.

그리고 저쪽 다른 산 꼭대기에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무리가 있다.

그들은 둘로 나뉘어진 길을 한참을 달리다

어느 순간 만난다.

-그 질주는 청각적으로 아주 아름답다.


첼로는 관현악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누어왔다.

대화의 한올 한올이 힘겹다.

윤이상이든 고통을 받은 그 누구든 힘겹다.

마침표를 피흘리듯 뚝뚝 찍어가며

그 둘은 문장으로 대화를 나눈다.


윤이상의 첼로가 첼로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거문고 같기도 하고, 환멸의 맥박 같기도 하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라는 진실 혹은 카피가 있다.

한때 주변의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공부를 강권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강권한다.

그것은 카피라이터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기를 바라는 의미다.

진실을 위해서

내 아들딸의 삶과 내 부모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나와 우리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역사는 바뀐다 - LG유플러스


혹 여성참정권의 역사를 아는가?

미국과 스웨덴의 경우,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몇몇 지방선거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문화사대주의의 오명을 쓰고 있던 나라가 문화를 수출한다.

역사는 이렇듯 변화한다.

빠른 시간 안에 침몰된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넘실대기를 기대한다.


첼로의 외침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을 외면해보라,

외면해보라, 외면해보라, 외면해보라

누구든 그리할 수 없다.

(2015년 가을날)





사라짐과 잊힘

대구, 2017년




사라짐과 잊힘



러시아 처음의 노벨상 수상자는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이다.

부닌을 읽지 않은지 수년이 지났다.


러시아를 추억하기에 사랑의 감정보다

 광활한 것은 없으리라.


내겐 부닌의 짧은 소설들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그것보다 좋다. 

시간의 기이함과 공간의 기이함의 차이?

양쪽  명을 받았다.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어두운 가로수 

지만지, 2008년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대부분의 언설,

전략이든 전술이든 카피든 디자인이든 뭐든

연애나 연애관계 안에 있다.

그리고 취향적으로 최상의 연애는,

이반 부닌의 짧은소설 속에 있다.


      여보게모든  사라지는 거라네사랑젊음.

      이 모든  말이야흔하고 평범한 이야기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법이야.

      <욥기> 이런 구절이 있지?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과 같을 것이며.'


      신이 누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모두의 젊음은 흘러가 버리지만 사랑은

      별개의 문제지요정말 당신은 나를 무정하게 

      버리셨어요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제가 당신을 

      니콜렌코라고 불렀던 시절당신은 저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하세요그리고 <어두운 가로수 >

      이라는  전문을 읽어주기를 바라셨죠.”


      그래  아름다웠어 몸매와 

      모두 넋을 잃고 너를 쳐다본  기억하니?


      기억하지요나리당신도 정말 멋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저의 아름다움과 정열을 

      바쳤지요어떻게 그걸 잊을  있겠어요.


      아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잊히는 거야.


*

그리고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부닌에 의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


사라짐과 잊힘 사이에 무엇이 있는 걸까? 

죽은 자도 기억과 추억이며 회한은 남기게 마련이란 뜻이겠지. 

그래도 문장은 수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엔 잊히고 말 테니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 한 줄은 부닌의 단편들 모두에 대해 

결론적이고, 그러므로 결정적이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울 만큼 

지독한 상실을 그려낸 사례로 

부닌의 단편들을 지목한다.


*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글을 써 낸 사례로 

부닌의 단편들을 지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