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Zagreb, 2015년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



돌이켜보면,

내가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별거 아니었지.


1

여보 두부  사와요!

주말 아침 아내가 심부름 시키면 

디게 마음이 배불렀다.


2

아빠안녕히 주무세요!

심야에 안방문 언저리에서 아들이 인사하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3

영화가 시작하기  비상구 안내영상이 나올 

나는 그냥 좋았다.


4

김사월의 '수잔' 처음 들었을 때도 행복했지.


5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 이유없이 행복했다.


6

다음달부턴 제게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순간도어찌보면 짜릿했다.


7

서점에  들어섰을 도서관에  들어섰을 

미치지.


8

차가  미끄러져나갈 때도 행복했고


9

 행복해야 ?

라고 누군가에게 되물었을 때도 행복했다.


10

가끔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극장가서 다시 봤을 때도 가슴이 든든해졌다.


11

누군가를 데리러 가는 길이 행복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했다.


12

내가 과감하게 개인적인 인간이란 사실에도 만족했다.


13

누군가 내가 참여해서 만들었던 광고얘기를 

해주면 정말 좋았다.

(세탁기 사러갔다가 영업사원이 보여주던 영상이 

내가 만든 거였어.)


14

아빠 뻥치지 !

내가 만든 광고를 아이가 믿지 않을  정말 행복했고


15

여보 그만 !

아내조차도 믿지 않을  너무 행복했지.


16

저주받은 걸작칸타타를 탈고 하고   

정말 후련했어.


17

이렇게 타다다닥키보드를 누를  있는 것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