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과 잊힘

대구, 2017년




사라짐과 잊힘



러시아 처음의 노벨상 수상자는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이다.

부닌을 읽지 않은지 수년이 지났다.


러시아를 추억하기에 사랑의 감정보다

 광활한 것은 없으리라.


내겐 부닌의 짧은 소설들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그것보다 좋다. 

시간의 기이함과 공간의 기이함의 차이?

양쪽  명을 받았다.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어두운 가로수 

지만지, 2008년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대부분의 언설,

전략이든 전술이든 카피든 디자인이든 뭐든

연애나 연애관계 안에 있다.

그리고 취향적으로 최상의 연애는,

이반 부닌의 짧은소설 속에 있다.


      여보게모든  사라지는 거라네사랑젊음.

      이 모든  말이야흔하고 평범한 이야기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법이야.

      <욥기> 이런 구절이 있지?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과 같을 것이며.'


      신이 누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모두의 젊음은 흘러가 버리지만 사랑은

      별개의 문제지요정말 당신은 나를 무정하게 

      버리셨어요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제가 당신을 

      니콜렌코라고 불렀던 시절당신은 저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하세요그리고 <어두운 가로수 >

      이라는  전문을 읽어주기를 바라셨죠.”


      그래  아름다웠어 몸매와 

      모두 넋을 잃고 너를 쳐다본  기억하니?


      기억하지요나리당신도 정말 멋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저의 아름다움과 정열을 

      바쳤지요어떻게 그걸 잊을  있겠어요.


      아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잊히는 거야.


*

그리고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부닌에 의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


사라짐과 잊힘 사이에 무엇이 있는 걸까? 

죽은 자도 기억과 추억이며 회한은 남기게 마련이란 뜻이겠지. 

그래도 문장은 수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엔 잊히고 말 테니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 한 줄은 부닌의 단편들 모두에 대해 

결론적이고, 그러므로 결정적이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울 만큼 

지독한 상실을 그려낸 사례로 

부닌의 단편들을 지목한다.


*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글을 써 낸 사례로 

부닌의 단편들을 지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