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늙음,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몸이야 편하지만 심적으로 고되서 어디론가 실종될 결심을 가볍게 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나이를 탓하더란 말입니다. 제 나이가 어때서? 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에 대한 얘기일 뿐이죠. 

출장 중에 구해서 긴 시간 사용해왔던 제 볼펜을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장 언저리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중인 디지털 똑딱이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저는,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는-틀려지는 것이 아닌-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집니다. 손때 묻은 볼펜과 낡아가는 카메라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반갑고 소중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 

늙어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어간다는 건, 태어날 때부터의 운명이죠. 제겐 때로 늙어간다는 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소한 사람에게만큼 먼저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요. 

고장나 버리더라도 심지어 고칠 수 없는 운명에 사로잡히더라도-그래서 태워지든 관 속으로 들어가든-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것은, 낡아가는 것은, 기억을 묻혀가는 것은, 상당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