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쓰다

Cape Town, 2017년



걷다 쓰다



'걷다'라는 동사는

'쓰다'라는 동사만큼 멋지다.

이 걷다와 쓰다 사이에 '생각하다'라든가

생각을 없애다 같은 동사를 집어넣으면

뭔가 지리멸렬해진다.

그저 '걷다/쓰다' 이 정도가 좋다. 어쨌든.


*

이병헌은 내내 걷는다.

(막연한 영화평이긴 하다.)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병헌이 걷는다는 거다.

      그는 왜 걷기만 할까, 뭔가를 좀 써봐야지.

정말 막연하지? 이런 의문들이 말이다. 다시 어쨌든


이병헌은 걷는다 멈춰 서서 바라본다 다시 걷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나는 이병헌이 걷기만 해서 

그가 죽은 사람인 것을 알아버렸다.

돌이켜보면 그가 이승에 등장하는 한 대목에서만,

아들을 걱정해서 병원으로 가는 그 대목에서만

      걸음을 멈추고 뛴다.

      

이주영, 싱글라이더

2017년 


실연을 당한 사람이 운동장을 달린다.

익숙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걸으면서 털어내기도 한다.

걸으면 바람을 맞지, 바람 속에 하나씩 털어내는 거다.

바람에 날리는 슬픔과 화는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너무 좋은 것에는 항상 거짓이 있는 법이예요.

이병헌의 이 대사는, 뻔하다.

그래서 좋다. 걷는 것 만큼이나 좋다.


*

걷다,는 동사는 어떤 의식을 말하지 않는다.

걷고 와서는, 걸을 때 부딪혔던 바람에 대해

뭔가를 써 볼 일이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산 자로서 쓰다,라는 행위는 크나큰 위로다.


*

걷다 쓰다

위로 받다

혹시 카피를 발로 썼다,고 했을 때의 

긍정적 의미가 이런 건가?

두 개의 카피가 똑같아도

카피라이터는 같지 않다.

카피라이터의 생활과 삶이 중요한 거지.

카피나 광고 따위가 아무려면 어떻겠냐고.

응?